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는 최태민이 기업들에 기부금을 걷고 정부 부처 이권개입을 했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1977년 딸과 최태민, 김재규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최태민 비리를 추궁했다. 당시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50억원)에 달하는 비리 사실들이 적시됐다. 당시 박정희는 ‘구국여성봉사단 해체’ ‘접근금지 조치’ 등을 지시했지만, 울면서 최태민의 결백을 주장하는 딸을 당할 수 없었다.
결국 대통령 딸과 최태민의 관계는 1979년 10월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이유로도 작용했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국민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최태민과 박 전 대통령 관계를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 딸과 최태민의 관계는 1979년 10월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이유로도 작용했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국민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최태민과 박 전 대통령 관계를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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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처
[박근혜 파면 - 영욕의 세월]짧았던 영광, 길었던 오욕…‘박정희 패러다임’도 막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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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다음날,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김재규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김재규 장군묘소 참배 http://blog.daum.net/lshang/41
먼저 가신분의 가이드가 있길래 똑같이 따라가보았습니다.
분당에 살아서 가는 시간은 한시간 안쪽으로 걸립니다.(서현역기준). 차가있으신 분들은 네비게이션에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4-1 를 찍으시면 됩니다. 차가 없으신 분들은 경기도 광주버스 17번을 타시고 시안공원묘지에 내리셔서 분당추모공원 사무실을 목표로 걸어오시면 됩니다. 약도는 이렇습니다
17번 버스를 타고 해당 정류장에 내리면 이런 풍경이 보입니다.
여기서 성남석재<->엘리시움 푯말 사이에 난 가운데 길로 쭉 올라오면 됩니다.계속 찻길을 따라 오르면 추모공원 사무실이 나옵니다. (이건 사진이 없네요). 차가 있다면 사무실 옆에 주차공간이 있으니 그곳에 주차하시면 됩니다. 사무실에서 "김재규 씨 묘소를 찾아왔습니다"라고 여쭈어보았는데 친절하게 가는 길을 알려주시더군요.
추모공원 사무실에서 보이는 갈래길인데, 여기서 일방통행(찻길)로 죽 올라가면 됩니다. 저는 괜히 빨리가겠다고 왼쪽으로 가다가 험한꼴을 보았습니다... 왼쪽 외길로도 갈수는 있는데 계단이 없고 매우 고되니 가운데 찻길로 죽 가는게 백배 낫습니다.
오르다보면 이렇게 다시 갈래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 길로 꺾으면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을 오릅니다
이 계산은 꽤 험하니 조심하세요. 눈비오는 날에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듯
계단을 다 오르고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는 사잇길이 있습니다. 매우 헷갈리는 곳인데 이곳 사진을 못찍어서 말로 설명을 하자면, 흔치 않은 소나무와 향나무가 자리잡은 언덕이 왼쪽 위에 보일겁니다. 그곳에 한바퀴 돌아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언덕을 왼쪽으로 한바퀴 돌아서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곳을 통해 올라가면...
도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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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묘소풍경입니다
훼손된 석비
놀랍게도 도착한 김재규 묘소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추모하신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김재규 종친회로 추측되는 분의 포스트잇 쪽지가 남겨있기도 하고, 각종 박근혜 탄핵, 파면 기사 신문이 이미 올라와있더군요.
와중에 다른 추모객 세분께서 오셔서 저 헌재 판결문 A4용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시바스 리갈 한잔 올리고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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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 분당추모공원 풍경입니다.

덧글
2017/03/11 22:3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해방이 조금만 늦었다면 카미카제 특공병이 되어서 산화한뒤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일본의 신이 될수 있는 명예를 얻을수 있었을텐데
어쩌다가 저런 누추한 묘지에 묻혔을꼬ㅋㅋㅋ
원래 이런 건 큰 건을 물어야 제맛이죠. 벌집핏자 탕수육 으악 탕탕탕!!!
안중근의 거사 이듬해에 한일합방이 있었고요.